법의 딜레마와 현장의 눈물
기계설비법! 분명 좋은 취지로 시작된 법인데, 왜 현장에서는 "자격증이 실무를 무시한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같은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오는 걸까요?
수십 년간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기술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농가나 학교 같은 곳은 과도한 부담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격증과 실무 능력, 공공 안전과 경제적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오늘 그 뜨거운 갈등의 핵심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비극을 막으려다 비극을 낳다? 기계설비법의 역설
솔직히 '기계설비법'의 첫 출발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당성을 가집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보일러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냉동창고 폭발 사고 같은 끔찍한 비극들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부실하게 관리되던 건물 속 기계설비들을 전문가의 손길 아래 안전하게 관리하고,
나아가 에너지 효율까지 높여보자는 국가적인 목표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었습니다.
안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위해 너무나 경직되고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법의 좋은 취지가 오히려 현장에서 또 다른 비극과 갈등을 낳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히게 된 것이죠.
“법의 핵심 목표는 명확하다. 부실 관리로 인한 인명 사고를 예방하고,
국가적 과제인 에너지 효율을 증대시키며, 건축 자산의 성능과 수명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 기계설비법 취지 충돌 분석 보고서
2. '연면적'이라는 획일적 잣대, 그 치명적인 함정
이 법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부분이 바로 '연면적' 기준입니다.
건물의 위험도나 설비의 복잡성과는 상관없이, 오직 면적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고액의 인건비를 들여 유지관리자를 선임하라는 것이죠.
이는 특히 축사나 학교 같은 곳에서 극심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축사는 면적만 넓을 뿐, 내부에 있는 기계라고는
환풍기나 간단한 난방기 정도가 전부인데도 법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학교 역시 교육 예산을 쪼개 수천만 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죠.
결국, 법을 지키지 못해 과태료를 내거나,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3. 사람은 없는데 자리는 넘쳐난다? '임시 관리자' 논란의 실체
법 시행으로 갑자기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지만,
정작 그 자리를 채울 자격증 소지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고육지책을 내놓습니다.
바로 법 시행 이전에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임시 유지관리자' 자격을 주고 2026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문제는 이들 약 3만 명의 임시 관리자들을
정규 자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부터 터졌습니다.
자격증 취득자들은 "수년간 노력한 우리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단기 교육으로 자격증을 남발하는
'교육 장사'로 변질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 정부/임시 관리자 입장: 2026년 고령층 대량 실업 사태를 막고, 심각한 구인난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 자격 기술자/협회 입장: 비전문 인력 양산으로 관리 품질이 떨어져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국가기술자격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불공정한 처사다.
4. 모두가 외면한 진짜 해법, '기능사'는 어디에?
'임시 관리자' 논란에 가려져 있지만,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현장 실무의 핵심 인력인 '기능사'들이 자격 기준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법은 산업기사 이상의 상위 자격만을 요구하고 있어,
에너지관리, 공조냉동 등 수많은 분야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숙련된 기능사들이 자격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 관련 협회들은 이것이야말로 인력난의 진짜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검증도 안 된 임시 관리자를 구제할 것이 아니라,
이미 실무 능력이 입증된 방대한 기능사 인력풀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안전한 해법이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정부가 '임시 관리자'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친 3만 명의 실업 위기를 피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을 수 있습니다.
기능사 제도를 손보는 것보다 임시 관리자를 전환시키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더 쉬운 해결책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인력 수급 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자격 시스템 전체의 신뢰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입니다.
5. 갈등 봉합을 위한 정부의 노력, 과연 충분할까?
다행히 국토교통부와 국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었는데요,
핵심은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불합리한 '연면적' 기준을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영세한 관련 업체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과연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자격과 실무 사이의 근본적인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법 개정은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6. 자격과 실무가 상생하는 길, 현실적인 대안은?
결국 이 모든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법 조항 몇 개를 바꾸는 것을 넘어,
자격 제도의 큰 틀과 시장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임시 관리자를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정식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돕는
'가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력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숙련된 '기능사'에게 경력에 맞는 자격을 부여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 정부/국회: 연면적이 아닌 '위험 기반' 선임 기준을 도입하고, 기능사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 산업/기술 협회: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체적인 인력 개발 프로그램과 현장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 건물주/관리자: 법을 비용 부담으로만 여기지 말고, 건물의 자산 가치를 높이고 안전을 확보하는 기회로 인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Q&A
마치며
지금까지 기계설비법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을 살펴보았습니다.
공공의 안전이라는 숭고한 목표와 현장의 경제적 현실,
그리고 자격과 실무 능력이라는 가치가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정부는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고,
기술자들은 변화하는 제도에 맞춰 역량을 개발해야 하며,
건물주들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필수로 인식해야 합니다.
자격증이 실무 경험을 존중하고, 실무 경험이 자격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기계설비법은 그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며 우
리 사회에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